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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람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빠르게 살고, 또 어떤 사람은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는 그 자체로는 누구에게도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에 우리는 흔히 시간을 따라가며 살아가게 된다.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런데 요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나를 그토록 변화시켰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이제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길거리에 펼쳐진 단풍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고, 바람은 시원한데 햇살은 여전히 따스하다. 나는 그저 한 걸음씩 걸으며, 그 풍경 속에서 멈춰 서곤 한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풍경도 지나쳐 버리게 되는데, 요즘 나는 조금 더 느리게 걸으며 순간을 즐기려 한다. 느리게 걷는 것이야말로 시간이 나에게 주는 선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항상 너무 짧게 느껴졌고, 해야 할 일들이 끝없이 쌓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떠올리며 서둘러 하루를 시작했고, 밤이 되면 그 목록 중 일부는 채워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마치 시간과 내가 함께 달리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에 나는 늘 급히 뛰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지금’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때 그때의 느낌이나 풍경은 나에게 무의미했으며, 내 몸과 마음은 늘 지친 상태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한다. 물론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은 많다. 직장에서의 업무, 가사일, 인간관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까지. 그럼에도 나는 작은 일 하나라도 진지하게 대하려 한다.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 그 맛을 제대로 느끼려 노력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인다. 길을 걸으며 주위를 살핀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의 작은 변화들이 내 눈에 들어오게 되면, 그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진다. 그게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조금 느리게 살아보려 하니, 내가 그토록 바쁘게 살았던 이유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단지 많은 일을 해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내가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처럼 똑같이 살지 않으면 뒤처질 것만 같았고, 시간이 나를 뒤쫓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런 두려움이 나를 무리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한다. 나는 내 안의 고요함을 찾으며, 그 고요함 속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여전히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일들을 할 때도 마음을 다해 한다. 내가 맡은 일에 집중하는 것, 그 일에서 나오는 성취감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일만으로 시간을 채우지 않으며, 매 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 순간들을 쌓아가고 있다. 가끔은 조용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본다. 거기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고요히 흔들리는 나무의 가지들,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 그런 모든 것들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 속에 몸을 던져본다. 비록 그 시간이 잠깐일지라도, 그것이 지나고 나면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낸 것이 된다. 그렇게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모여 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것은 시간을 향한 빠른 달리기가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가는 법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나의 삶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