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혼자 걷는 길
한밤중,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는 시간에 나는 문득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무언가의 소리에 눈이 떠지지도 않았고, 특별히 떠올릴 것도 없는 조용한 밤이었다. 그런데 왠지 알 수 없는 이끌림이 나를 집 밖으로 이끌었다. 몇 분 동안 고민하다가, 나는 슬리퍼를 신고 얇은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도시는 잠들어있었고, 익숙한 거리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그 시간의 거리에서 나는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골목 끝에 놓인 오래된 가로등이었다. 그 가로등은 오래되고 낡아서 불빛이 고르지 않았고, 그 불빛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려 불안정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이 작은 가로등이,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서 강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오래된 영화 속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런 느낌은 나를 한층 더 고요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내가 걷는 동안, 문득 마음속에 흘러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하나둘 떠올랐다. 어릴 적의 추억, 잊고 지낸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미한 불안감 같은 것들. 평소라면 복잡하게 느껴졌을 이런 생각들이 한밤의 거리에서는 오히려 잔잔하게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의 생각들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지도 않고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나를 더 깊은 사색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멀리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어둠 속에서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금세 사라지고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문득 '이 길을 걷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나는 주로 아침이나 낮에 걸으며 사람들과 함께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을 들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의 나는,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서 걸으며 내가 몰랐던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들려오는 것은 가끔씩 스치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그 바람 소리는 차갑지만 어딘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나는 평소에는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작은 변화와 감각들에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바람, 가로등 불빛, 고요한 거리, 그리고 내 발끝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소리들이 마치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오롯이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동이 트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은 점차 옅은 파란빛으로 변했고, 멀리서 일출의 징조가 느껴졌다. 새벽빛이 스며들면서 어둠이 조금씩 사라졌고, 그와 함께 내가 느끼던 고요함도 함께 옅어졌다. 낮이 오면 다시 사람들의 소리, 자동차 소리, 도시의 소음이 나를 둘러싸겠지만, 나는 이 잠깐의 고요함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올릴 수 있는 조용한 밤의 산책, 그것이 주는 위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마음속의 사색은 계속되었지만, 처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밤의 고요함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얻은 것 같았다. 나의 내면,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소중한 한밤중의 산책. 이 경험은 아마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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