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잠시 멈춤의 시간
가을이 오면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그저 바라만 본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뛰어가고 있지만, 가을은 그런 모든 것에 잠시 휴식을 선물하는 듯하다. 바람은 서늘하게 불고, 나뭇잎은 하나둘 떨어지며 가을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가을이면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가곤 했다. 그때는 내가 왜 그 산책이 그렇게 좋았는지 잘 몰랐다. 그냥 아버지와 함께 걸으며 가을의 풍경을 즐겼고, 그저 조용한 시간이 좋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자연을, 가을을 느끼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셨지만, 그 순간순간이 하나의 큰 가르침이었음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가을의 풍경을 묘사하자면 참으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하늘은 푸르며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햇살은 부드럽게 나뭇잎을 비춘다. 길가의 나무들은 가을빛에 물들어 붉고 노란 색으로 화려하게 변하며, 떨어지는 낙엽이 바람에 실려 나르며 나뭇가지에서 바닥으로 춤을 춘다. 이런 풍경을 보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잠시 멈춤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늘 바쁘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하고,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작은 것들을 놓치고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가을은 그런 바쁜 삶 속에서 나를 일시적으로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다시 꺼내어 볼 수 있다. 마치 일상이라는 흐름 속에서 잠시 벗어나 멀리서 나를 돌아보는 것처럼.
가을은 또한 인생의 끝자락을 떠올리게 한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나에게 삶의 순환을 상기시킨다. 봄에는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푸른 잎이 자라지만, 결국 가을에는 그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가며, 다시 겨울을 맞이한다. 이 변화의 과정 속에서 나도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어린 시절을 지나 청춘을 거쳐, 이제는 어느덧 중년이 되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돌이켜본다. 가을이 주는 쓸쓸함과 아름다움은 그런 나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가을은 그 자체로 쓸쓸하지만 동시에 위로가 된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마음이 시려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한 장 한 장 주워 담으며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지나온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왔음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가을이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잊고 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가을이 주는 멈춤의 시간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가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온도와 향기 때문이다. 가을의 공기는 차갑지만 그 속에 따스함이 숨어 있다. 이 온도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쫓기듯 살아온 시간이 지나, 이제는 가을의 서늘한 바람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을은 그 향기가 특별하다. 풀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간혹 가는 나무의 향기가 섞여 있다. 그 향기를 맡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자연이 주는 선물 같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가을을 맞이하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가을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항상 “그렇다”는 답이 돌아온다. 왜냐하면 가을이 주는 이 잠시 멈추는 시간 동안,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내 안에서, 작은 순간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가을은 내게 큰 선물이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한 번 나아갈 힘을 얻는다. 세상이 끊임없이 돌아가듯, 내 삶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가을은 언제나 나에게 멈추고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채우고, 다시 세상과 만나고 싶어진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다시 바쁜 일상이 돌아오겠지만, 나는 그 안에서 또 한 번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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