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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무와 함께 걷다


가을, 나무와 함께 걷다

가을의 길목에 들어서면, 언제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묘한 감정이 솟구친다. 여름의 무더위가 물러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가을의 정취다. 이맘때면 나는 주로 가까운 숲이나 공원으로 발길을 옮기곤 한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드문 드문 들리는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고요함을 찾는다. 나무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들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오늘도 나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곳에 도착하자,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잎사귀들이 고요히 떨어진다. 나무 한 그루가 휘어진 채 서 있으면, 그 모습은 어딘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진다. 굽이진 줄기가, 울퉁불퉁한 껍질이, 매일같이 바람을 맞으며 나무는 살아간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지만, 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그 자체로 존재한다.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만 때문은 아니다. 나무는 오랜 시간을 지나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몇 세대에 걸쳐 살아온 나무들은, 그 자리에 뿌리내리며 지나간 계절을 기억하고, 여전히 그곳에서 숨을 쉰다.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지만, 그 떨어진 잎사귀 하나하나도 나무에게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 잎들은 나무가 지난 계절을 기억하는 작은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무들이 보여주는 그 꾸준함과 묵묵함이 가끔은 내게 위로를 준다. 나는 가끔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바쁘게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게 큰 목표를 쫓느라 자주 놓쳐버린 소소한 것들, 그저 사라져버린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나에게 나무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찾아와도 나무는 변하지 않는다. 그 꾸준함을 보면, 나도 나 자신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순간에도,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가을이 되면 나무들 외에도 다른 많은 것들이 변한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구름은 거기 있을 듯 말 듯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주변의 풍경은 점점 색을 바꾸며, 하늘과 땅 사이에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면, 나무들의 가지가 휘어진 모습도, 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도 모두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무엇인가 답답했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는 듯하다. 가을은 결코 낙담의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다림과 변화,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계절이다.

가을이 주는 여유 속에서, 나는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그동안의 삶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 기쁨과 슬픔이 모두 내 삶을 이루는 한 부분임을 깨닫는다. 나무처럼 한 자리에 서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많은 일들에 휘둘리며,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지나칠 때가 많다. 나무들은 묵묵히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다. 나는 가을이 되면 그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나무들이 그처럼 성장하듯, 나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기를 다짐하게 된다.

내가 자주 가는 그 숲길에서, 나무들의 가지가 서로 얽히고, 그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가끔 나무들 속에서 길을 잃을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길을 따라가면 다시 내가 오던 길을 찾을 수 있다. 삶의 길도 그렇다. 때때로 갈팡질팡하게 되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위한 길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을의 나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색이 변해간다. 초록에서 황금빛으로, 붉은색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바닥에 떨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삶의 마지막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인 듯하다. 나무들은 매년 가을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준비한다. 나 또한 이 가을에 많은 생각을 정리하며, 내년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숲길을 걷고 있다.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나무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린다. 그들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은 조용한 소리가 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닿는 듯하다. 나무들은 변화하지 않지만, 나는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더 나은 내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가을의 나무들과 함께 걷는 이 순간, 나는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