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가을이 오면 늘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 기분은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 찾아온다. 긴 여름의 무더위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시원해지면, 어김없이 여름 내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느껴지는 나뭇잎 색깔을 보며 자연스럽게 옛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이 나를 그때 그 자리로 데려가곤 한다.
나에게 가을은 고등학교 시절, 캠퍼스 한쪽에 떨어지던 은행잎과 운동장에서 소리를 지르던 친구들의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때 나는 미래에 대해 무엇을 알았을까.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르던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찬 나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라고 믿었다. 학교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짧아진 해가 내려앉고 노을이 물드는 시간의 감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그때 나는 ‘지금’이라는 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느끼고, 삶을 향한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감정을 끌어안았다.
또한, 가을 하면 항상 생각나는 책 한 권이 있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도서관에서 손에 잡혔던 에세이집이었다. 그 책은 자주 손이 가는 편은 아니었지만, 내가 힘들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책장 한구석에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 책 속 글들은 사소한 일상이나 작은 자연의 변화에 대한 감상들이 주를 이루었고,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인생의 깊이에 대해 깨달음이 없는 그 시절의 내가 공감하기엔 아직 먼 글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글 속 문장들이 마음속에 울림을 주었다.
가을의 낙엽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삶의 순환과 변화를 느끼게 된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계절을 마주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성인이 되고, 취업을 하고, 점점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는 마치 어느새 ‘되돌아보기’를 잊어버린다. 하지만 가을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추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치 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다.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아, 네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느리게 걸어가도 괜찮아"라는 말을 전해주는 듯하다.
특히, 도심 속에서 한쪽으로는 초록빛을, 또 다른 쪽으로는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가을의 나무들을 보면, 마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나무들이 계절을 거치며 색을 입고 다시 벗는 것처럼, 우리 역시 매일같이 다양한 감정과 변화를 겪는다. 그러면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나무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가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키워가며 성장해 간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서, 나는 가을의 아름다움이 왜 더 짙고 쓸쓸하게 다가오는지를 문득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가을의 황홀함 속에서 잃어가는 것들과 다가올 것들에 대한 미묘한 슬픔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이 오면, 나는 자연스레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 두 시간의 경계선에서,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묘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가을은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여백이자 쉼표 같은 계절이 아닐까 싶다. 모두가 잠시 멈추고, 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삶의 여러 의미들을 되새기게 만드는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매일의 삶은 아마도 바쁘고, 때로는 그 속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을은 그 속에서 잊고 지내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주고, 잊혀져가던 꿈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삶의 여백 속으로 나를 초대한다.
가을이 오면, 나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번에 마주하게 된다.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순간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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